락(樂)
한성기
나는 밭에 나가서 조금씩 일을 했다 얼마간의 땅을 삽으로 파 일구었다
두둑을 만들고 씨앗을 뿌린 다음 그 일정한 면적이 나의 영역인것 같이 찾아 갔다
토마토 봄배추 가지 오이… 그것들이 싹트면서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은 그지 없이 기쁜 일이었다.
군순한데서 지리하지 않으려는 것 어쩌면 무미하고 아무것도 아닌것과 사귀면서 그속에서 락을 찾았다.
계절이 바뀔때 마다 스스로 주시는 말씀 늘 그 말씀이시다.
조용하면서도 당당하고 나직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
한성기 시집 『낙향이후』,《활문사》에서
한성기 시인의 락(樂)을 읽어보면 우리가 사는 삶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희망을 가져오는 그런 곳에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 희망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詩가 락(樂)이라고 생각된다. 작은 밭을 일구며 그곳이 일정한 거리의 둑을 만들고 씨를 뿌려서 그 씨앗의 싹이 트는 것을 기다리는 즐거움, 그 싹이 자라는 즐거움,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생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잡초를 뽑아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그 무미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과 사귄다고 말했다. 나이 들고 갈 곳 없는 사람에게 소일거리 텃밭을 가꾸는 일이란 그 어떤 친구보다도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이다. 그 텃밭에서 계절마다 주는 말씀이 늘 당당하고 카랑카랑하시다고 말한다. 그럴 것이다.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그 땀의 노력에 답해주는 땅이 있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본다. 한성기 시인도 땅과 그 시간을 보내며 침묵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한결 임영석)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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