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플로리스트 명장을 꿈꾸는 생활 속 문화 예술인, 조형화기 작가 박인자

김철우 기자 | 기사입력 2019/04/22 [23:32]

대한민국 플로리스트 명장을 꿈꾸는 생활 속 문화 예술인, 조형화기 작가 박인자

김철우 기자 | 입력 : 2019/04/22 [23:32]

[강원경제신문] 김철우 기자 = 그는 조형예술을 하며 다도를 하는 생활예술인이다. 강원도의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어 그 지방의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터키문화원 초대전에 참여할 정도로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 일에도 게을리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박인자 선생님을 만나 꽃 이야기를 들었다.

 

▲ 플로리스트 박인자     © 김철우 기자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꽃 한 송이를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게 하는 것이 꽃이다. 1989년 10월 9일 한글날 교사 아내가 되었다. 결혼 30년 만에 남편은 교감발령을 받았고 신이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꽃이라 한다면 그 꽃만큼 아름다운 선물인 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 아이들이 장성하여 큰딸아이는 질병관리본부에 작은아들은 가스안전기술공사에 작년 4월에 모두 취직이 되어 은근히 자랑스러운 엄마로 살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은 먼저 쓰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내가 제일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삶의 목표로 두고 나 먼저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 흐르듯이 시간과 경제를 투자하여 취미와 교양 학문을 번갈아 가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남들이 나에게 작가라고 부를 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이유는 누구든지 어느 학문이든 10년이 넘으면 박사라 부르고 작가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플로리스트 작가, 도자기 작가, 조형작가, 그리고 차(茶)를 사랑하는 CEO가 되었다. 예술은 어느 하나를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과학, 철학 등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깊이 이해하여 하나로 표현할 때 아름답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한다는 생각과 좀 더 객관적으로 삶을 관조하듯이 바라볼 수 있어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생활 속에 참 예술을 알고 아름다운 삶이 살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공부하기를 기뻐하며 호기심 있게 살고 있다.

 

▲ 조형화기 작가 박인자     © 김철우 기자

 

꽃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우리 친정은 기독교 문화를 갖고 있다. 종교적으로 늘 봉사와 배려가 몸에 익숙하며 지냈다. 교회에서는 봉사자를 찾는다, 특히 피아노 반주자는 교회에서는 가장 필요로 한 봉사였다. 지금이야 피아노 전공자가 많아 봉사자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시골교회에서는 피아노를 치며 예배시간마다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 전 나의 꿈은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 피아노 봉사 하는 게 꿈 이였다. 나의 꿈은 결혼하는 다음날로 순종이라는 명분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남편의 집안 또한 시할머니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라 결혼 후 당연히 시댁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는 저에게 제단에 꽃꽂이 봉사를 권유했다. 그때는 이미 피아노 전공자가 반주하고 있어 나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친정엄마의 권유대로 무작정 꽃꽂이를 배웠다. 꽃을 좋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신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꽃을 가장 아름답게 꽂아 인간에게 축복을 기도를 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다. 정말 신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감동을 주어 나약한 인간에게 긍휼함을 베풀기를 바라며 또한 교인들도 그 꽃을 바라보면서 위로받기를 바라며 꽂기 시작하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꽃이 계절별로 반복해서 보게 되어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는 그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익숙하여 옛 친구처럼 반갑고 더욱 각각의 특성을 발견하며 모든 꽃에 반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는 꽃 한 송이를 꽂으며 행복해한다. 

 

꽃을 하면서 힘들었을 느꼈던 때는

 

나는 가난한 공무원의 아내이다. 물론 물려받은 재산 없이 갓 결혼한 새댁이 꽃꽂이 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89년 10월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생겨 육아에 매진하면서 더욱 힘든 일이다. 꽃꽂이 학원은 원주에 딱 하나밖에 없을 당시 학원생들은 의사부인, 변호사 부인 직장인들이나 경제력을 갖춘 이들이 대부분 이였다. 결혼 전 공무원으로 지낸 나로서는 넉넉지는 않지만 어려워 본 적이 없는 터라 경제개념이 없는 것은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 당시 학원비는 꽃값과 함께 내려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배포가 큰 듯하다. 6개월 특강료가 2백70만 원 정도였다. 그 당시 17평 아파트가 7백만 원 정도였으니 학원비가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다. 주위에서 비난도 있었지만 10명이 특강을 받았는데 졸업은 나 혼자 했으니 내 형편이 어려운지 자체도 알지 못한 일이기에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터라 아이들 학원비보다 내 학원비가 더 많이 들었을 때 나는 사범이라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비와 육아비를 남편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당시 신부 부케는 지금과 달리 굉장히 중요한 부분 이였기에 나만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예식장에서도 전문성을 인정해 주었다. 예식장의 부케작업은 아이들을 모두 재워둔 후 금요일과 토요일 새벽에 날밤을 새워 작업해서 아침에 예식장에 갖다 주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온 듯하다.

 

▲ 박인자씨 작품     © 김철우 기자

 

꽃을 하면서 보람되었던 때는

 

꽃이란 산업화하는 일환이기에 국가기관인 인력관리 공단에서 2004년 처음 화훼장식 기능사라는 제도를 만들어 이론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당시 선배들은 교양으로 배운 꽃꽂이가 기능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기에 기능사 시험을 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하찮게 여겼다. 나는 30대 중반이었기에 자격증을 받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에너지가 충분하여 늘 일을 만들며 도전하는 편이라 아이들을 키우고도 남아서 무엇인가 찾아서 일하였다. 이미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터라 2005년에 화훼장식 기능사를 취득하고 다음 해 2006년에 화훼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 자격증을 요구하는 기관이 늘어나니 하찮게 여기던 회장단들도 너도나도 소리 없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화훼장식 기능사, 기사는 특수고등학교 각 대학의 원예학과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필수 과목이 되었다.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꽃이라는 재료를 통하여서 관심을 갖게 하고 그들의 취업과 진로진학을 준비시키며 그들이 인생설계에 꽃이라는 소재로 함께 소통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특수고등학교의 원예학교나 각 대학의 원예학과 에서는 화훼장식 기능사와 학교에서 요구하는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도록 고등학생들에게 지도하여 진로진학까지 안내하며 그들이 특수고등학교에서 가장 무료해 하며 지내는 시절에 꽃을 통하여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지도하였다. 처음 지도한 아이들이 지금 원예학과 대학 2학년이 되었다. 올해 새해에 모두 삼삼오오 세배를 다녀갔다. 참으로 보람된 기쁨이며 그들의 앞날에 큰 축복이 있기를 바라본다.

 

꽃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화훼 분야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큰 산업이다. 작게는 화원을 차릴 수 있지만 크게는 국제 기능대회에 출전하여 세계에 국가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능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나갈 수 있음은 그동안 꾸준히 한 분야를 공부한 덕이기도 하다. 지방기능대회 심사위원을 거쳐 전국기능경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나갔을 때 일이다. 제52회 전국기능경기 대회는 제주도에서 열렸다. 일상을 탈피할 구실이 생겨 공식적인 출장이라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흔쾌히 전국기능대회 화훼분과 심사위원으로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과 꿈에 부풀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들떠있던 나는 경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 거수 일투족이 감금당하다시피 하루하루 집계가 나올 때까지 숙소에도 갈 수 없이 호텔과 경기장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도, 연락할 수도 없었다. 3박 4일 동안 제주도는 공항과 호텔 경기장 밖에 볼 수 없이 새벽까지 심사하며 마쳤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직도 세상을 늘 아름답게만 보는 삶을 살고 있음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 조형화기 작품     © 김철우 기자

 

꽃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은

 

정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그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와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끝없이 공부하며 지낸 세월 속에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전공자가 되었다. 화훼장식가, 도자기전공자, 조형예술가, 다(茶)도를 즐기는 차(茶)으로서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활 속 예술을 꽃과 함께 승화시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다. 꽃을 생산하는 농민으로부터 꽃을 즐기는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예술적 가치를 접목하여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농부는 꽃 한 송이를 재배할 때 유통을 거쳐 마지막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사용하는 것을 알고, 소비자는 농부의 아침 햇살 속에 신이 내려주신 아름다운 선물을 생산하며 관리하는 친숙한 환경에서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하여 한 송이의 꽃이 행복의 첫걸음임을 느낄 수 있도록 예술로 탄생시켜 좀 더 친근감 있는 생활 예술을 꿈꿔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은

 

어느 날 작업실로 손님이 한 분 찾아오셨다. 북에서 넘어온 청년들을 돌보며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교장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나의 지인이 나를 찾아가면 해결될 것이라고 권유했다며 들리셨다. 이유를 들어보니 북에서 넘어온 남녀가 사랑하게 되어 결혼식을 올리는데 여유가 없지만, 의미 있게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한다. 결혼식 계획을 들어보니 야외 식당은 지인이 빌려줘서 해결되었는데, 꽃장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들이 계획한 들어보니 100명의 손님을 초대하여 100명의 손님에게 꽃다발을 하나씩 전달하여 신랑 신부에게 축하하며 전달하는 게 이벤트란다. 거기다 신부의 머리에 쓰는 화환은 꼭 하고 싶다고 하고 부케는 필수며 야외 결혼식장 장식도 해달란다. 그렇게 하려면 대충 예산 잡아도 200만 원은 있어야 할듯하다. 예산이 있느냐고 하니 예산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란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지만 찾아온 사람을 생각하고 그 젊은 친구들을 생각하니 현실감 없는 내게는 또 천사 같은 전령사 마음이 전달되어 최소한의 예산을 잡아야 한다고 하니 20만 원을 갖고 오셨다. 나는 100개의 꽃다발과 신부 머리에 씌워줄 화관과 부케 그리고 길가의 꽃장식을 회원들과 축제의 날을 위해 함께 밤새도록 한 기억이 힘든 일이었지만 아직도 기분 좋게 한다. 결혼식 날 많은 각양각색의 지인들이 축제의 자리처럼 정성스럽게 꾸미고 축복하고 축하해 주러 왔다. 지금은 까맣게 잊고 지내겠지만 바람에 전해지는 소식은 신랑은 자동차 정비를 배워서 일하고 신부는 직장생활을 알차게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고맙고 감사하다. 가끔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사는 다문화가정이나 어려운 가정이 있어 결혼식 장식을 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즐기며 봉사하고 있다.

 

▲ 작품     © 김철우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초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꽃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꽃을 꽂는 화기(花器)가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해져 오는 전통적이 화기(花器)와 현대적인 화기(花器)의 조화를 이루어 조형화기(造形花器)에 관하여 연구하고 산업화시켜 꽃을 주제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조형화기(造形花器)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나는 꽃으로 인해 화기(花器)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대학원에서는 조형화기(造形花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은 화기 공모전을 매년 유치하고 전통화기와 현대화기의 발전을 도모하여 세계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산업화시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화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조차도 깊이 있게 인식되지 못함은 아직도 조형화기 분야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자기 하는 사람은 꽃을 모르고 꽃을 하는 사람은 도자기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는 꽃꽂이 작가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화기가 저변확대 되어서 일반 소비자들도 현대 조형화기의 작품성을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도자 조형화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생활 속 예술로 좀 더 넉넉하고 깊이 있는 꽃 문화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꽃꽂이 花形을 응용한 陶瓷 造形花器 開發에 관한 硏究’라는 대학원 논문제목을 갖고 꽃꽂이의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어도 소비자가 좋아하는 꽃 한 송이를 화기의 선택으로 인하여 추구하는 작품을 유도하여 꽂을 수 있도록 조형화기 개발에 끊임없이 연구하여 산업화시킬 것이며 이로 인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조형화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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