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찾아온 날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조각-푸른숲 시골빛 삶노래(16)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기사입력 2014/09/26 [11:39]

가을이 찾아온 날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조각-푸른숲 시골빛 삶노래(16)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입력 : 2014/09/26 [11:39]

예부터 한가위나 설은 ‘한가위’나 ‘설’이었습니다. 한가위나 설은 ‘귀성’이나 ‘역귀성’으로 가리키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가위나 설은 한가위나 설이라기보다 ‘고단한 마실길’입니다. 너도 나도 자가용을 몰아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가는 길이니, 어디에서나 끔찍합니다. 아마 천만 대 즈음 될 자가용이 한꺼번에 도시를 빠져나가 시골로 간다 할 수 있을 테니, 생각으로만도 끔찍한 일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끔찍한 ‘귀성’이나 ‘역귀성’을 해야 할까요. 반가우면서 따사롭고 즐거운 한집이라면, 늙은 어버이를 시골에 외따로 두지 말고, 다 같이 큰집을 이루어 즐겁게 살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잘게 쪼개진 집이 아닌 큰집을 이룰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곁에서 보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언제나 함께 어우러지는 집이면 됩니다. 회사 때문에 잘게 쪼개어질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서로 갈라져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왜 다니고, 돈을 왜 벌까요. 우리가 저마다 이루고 싶은 뜻이나 꿈이란 무엇인가요. 어린 아이들하고 늙은 어버이는 동떨어진 채 무슨 뜻과 꿈을 이루려 하는가요.
 
도시에서 숫자싸움만 하면서, 이를테면 경제개발과 성과와 성적을 내세운 숫자싸움을 하는 동안 이웃과 동무는 언제나 맞수가 됩니다. 남남입니다. 도시에서는 이웃과 동무가 없습니다. 겨루거나 다투면서 밟고 올라서야 할 맞수일 뿐입니다. 운동경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몸을 다스리면서 마음을 살찌운다는 운동경기라지만, 정작 모든 운동경기는 ‘이기고 지는’ 틀이 더 단단해집니다. 즐겁게 몸을 가꾸는 운동경기가 없습니다. 이웃과 동무를 아끼면서 서로 사랑하려는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돈을 벌고 광고를 따는 스포츠만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도시와 달리, 이를테면 경제개발이나 성과와 성적을 내세우는 숫자싸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은 젊은이와 어린이가 몽땅 도시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남은 늙은 어버이는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와 비닐에 기댑니다. 일손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새마을운동 언저리에 이녁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면서 학비를 대느라 ‘농협에 곡식과 열매를 팔아서 돈을 버는’ 틀에 갇혔습니다. 이제 시골마을 늙은 어버이가 낳은 아이들이 다 자라서 손자를 낳는데, 아직도 예전 틀에 얽매인 채 농약과 비료와 농기계와 비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굳이 돈을 더 만져야 하지 않으나, 즐거운 시골일이 못 됩니다. 애써 돈을 더 만들어야 하지 않는데, 땅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끝없이 씁니다.
 
도시에 있는 젊은 어버이들 곁에 늙은 어버이가 있다면,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돈만 바라는 틀이 누그러지리라 느낍니다. 늙은 어버이는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젊은이한테 들려줄 수 있습니다. 시골에 있는 늙은 어버이들 곁에 젊은 딸아들이 있다면, 시골에서는 농약도 비료도 농기계도 비닐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가장 정갈하고 깨끗하며 싱그러운 남새와 열매와 곡식을 얻을 수 있어요. 시골집 사람들이 먹을 만큼 거두는 남새와 열매와 곡식이 되면, 손으로 얼마든지 심고 거둘 만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작은 땅뙈기에 남새와 열매와 곡식을 거두어도 다 못 먹기 마련이에요.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키운 곡식과 남새는 도시에 있는 이웃한테 ‘농협 수매값’보다 훨씬 나은 값을 받으며 팔 수 있습니다. 몸도 살리고 마음도 가꾸며 돈까지 더 버는 길이 열립니다.
 
서정홍 님 동시집 《닳지 않는 손》(우리교육,2008)을 조용히 읽습니다. 서정홍 님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시골로 들어가서 흙을 만지는 흙지기가 되었습니다. 기름내 나던 손이 이제는 흙내 나는 손이 됩니다. 시골살이를 누리면서 아이들한테 시 한 줄 나누어 주는 어른이 매우 드뭅니다. 서정홍 님은 이 땅 아이들한테 흙내음과 풀내음과 숲내음을 들려줍니다.
 
〈봄〉이라는 노래를 읽습니다. 어른시도 동시도 모두 노래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노래를 책으로 읽는 셈입니다. “지난봄에도 올봄에도 / 창원대로에 벚꽃이 피었어요. // 한 해 내내 매연을 마시고도 / ‘야, 봄이다 봄이야!’ / 보란 듯이 벚꽃이 피었어요. // 자동차 매연도 / 봄한테는 이길 수 없나 봐요” 참말 그렇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나무가 꽤 있어요. 다만, 돈을 들여서 심은 나무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라는 나무는 몇 해 못 삽니다. 웬만한 나무는 천 해나 이천 해는 거뜬히 살지만, 도시는 끝없이 재개발을 하기 때문에, 서른 해나 쉰 해를 버티기 힘들어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하는 어른들은 시멘트집만 허물어 재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시멘트집 둘레에서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뭉텅뭉텅 베어서 죽여요.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는 모두 슬픈 삶이라 할 텐데, 그래도 봄이 되면 모든 나무가 곱게 꽃을 피워요. 고운 봄꽃으로 도시사람한테도 맑은 숨결을 베풀어요.
 
경제지표로 따진다면, 봄꽃 한 송이는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봄꽃 한 송이는 사람들 마음을 따스하게 덥힙니다. 봄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마음이 싱그럽게 열립니다. 해사하며 그윽한 기운이 온몸에 퍼집니다.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으로는 이런 기운을 주지 못합니다. 화장품이나 향수도 이 같은 숨결을 베풀지 못합니다. 오직 나무 한 그루가, 풀잎 하나가, 꽃송이 하나가, 씨앗 한 톨이, 사람들한테 맑고 깊게 스며듭니다.
 
〈어떻게 살까〉라는 노래를 읽습니다. “나는 얼굴을 씻으면서 / ‘물을 아껴 써야지.’ / 이를 닦으면서 / ‘물을 아껴 써야지.’ / 이런 생각을 자꾸자꾸 하다가 / 겁이 덜컥 났습니다. // 이대로 수돗물이 안 나오면 /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참말 그래요. 도시에서 수돗물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전기가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가스가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대목을 생각하나요? 그리고, 이웃나라에서 한국에 곡식과 남새와 열매를 팔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사람은 으레 ‘중국산은 먹지 말자’고 말하지만, ‘한국산만으로 한국사람이 먹고살 수 없’습니다. 시골이 와장창 무너졌고, 도시는 너무 뚱뚱하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칠레와 베트남과 캐나다와 미국과 러시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것저것 사들여야 합니다. 하루라도 이웃나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이지 않는다면, 수돗물이 끊긴다면, 참말 도시에서는 어떤 삶을 이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도시 사회와 문명이란 무엇일까요? 시골에서는 수돗물이건 전기이건 가스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뭐 하나라도 끊어지면 죽음과 같은 전쟁통이나 난장판입니다. 이 가을에 도시와 시골을 헤아려 봅니다.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 가을에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사랑이란 무엇인지 헤아려 봅니다.


 
글쓴이 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전남 고흥에서 꾸린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살려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후원 은행계좌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이들을 비방하는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됩니다. 대한민국의 깨끗한 선거문화 실현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