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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되려고 기다리는 씨앗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조각-푸른숲 시골빛 삶노래(25)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기사입력  2014/11/28 [19:19]


밥 한 그릇은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이면서, 다시 벼라고 하는 풀이 돋도록 하는 씨앗입니다. 밥이란, 솥이나 냄비에 물을 붓고 쌀을 넣어 끓여서 얻는 먹을거리입니다. 쌀이 밥으로 바뀝니다. 쌀은 겨를 벗긴 벼입니다. 겨를 통째로 먹어도 되지만, 씹기에 한결 수월하도록 겨를 벗깁니다. 겨란 쌀알을 감싸는 껍질입니다. 쌀알에는 씨눈이 있고, 이 씨눈이 바로 새롭게 벼풀로 자라도록 이끄는 알맹이입니다.
 
벼도 풀입니다. 벼에서 얻는 볍씨인 나락은 쌀알이면서 풀알입니다. 풀알이란 풀열매입니다. 풀열매를 먹는 우리들은 풀밥을 먹는 셈입니다. 풀밥을 먹으니 풀내음을 먹고, 풀숨을 받아들입니다.
 
볍씨 한 톨은 새로운 볍씨를 백 알 즈음 내놓습니다. 이듬해에 새롭게 심어서 돌볼 씨앗을 남긴 뒤, 한 해 내내 즐겁게 쌀밥을 지어서 먹습니다.
 
씨앗을 먹기에 목숨을 얻습니다. 새롭게 싹이 틀 수 있는 씨앗을 밥으로 지어서 먹기에 목숨을 잇습니다. 씨앗은 땅에 깃들면 새로운 풀이나 나무가 되고, 우리 몸에 들어오면 새로운 숨결이 됩니다.
 
《나무의 아기들》(천개의바람 펴냄,2014)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빚은 이세 히데코 님은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 《첼로, 노래하는 나무》 같은 그림책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을 그리는 이세 히데코 님은 ‘숲·나무·씨앗·노래·사랑·삶’을 한데 엮어서 쉽고 보드라운 결로 이야기합니다. 《나무의 아기들》이라는 그림책은 ‘나무가 낳는 아기 = 씨앗’이라는 얼거리를 바탕으로 ‘씨앗은 다시 어머니 나무가 되는 넋’이라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벽오동 아기는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바람의 여행을 떠나지요(4쪽).” 나무는 모두 다릅니다. 모두 다르기에 나무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우리 둘레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서 자라는 나무한테 누가 어떤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붙였을까요? 표준말로 가리키는 이름뿐 아니라, 고장마다 다 다르게 가리켰을 이름을 헤아려 보셔요.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셔요. 은행나무가 있나요? 방울나무가 있나요? 느티나무가 있나요? 소나무가 있나요? 벚나무가 있나요? 자, 이밖에 도시에서는 어떤 나무를 더 구경할 수 있나요? 아파트에는 없을 테지만, 퍽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습니다. 살구를 좋아하면 마당에 살구나무를 심을 만하고, 복숭아를 좋아하면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돌볼 만합니다. 포도나무를 마당에 심을 수 있고, 동네 빈터에 오동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나무를 심는 사람은 나무마다 다른 이야기를 심습니다. 뽕나무를 심을 적에는 뽕나무가 자라는 결과 함께 누리는 이야기가 있고, 느릅나무를 심을 적에는 느릅나무가 자라는 결과 같이 누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어떤 뜻을 함께 품는가요.
 
“북풍이 지나가면 도토리들이 투두둑 떨어져요(10쪽).” 시골마을 우리 집 마당과 뒤꼍에서 자라는 나무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마당에 우람하게 선 후박나무에는 한 해 내내 마을 멧새가 쉼없이 찾아듭니다. 여름에 후박꽃이 핀 뒤 후박알이 까맣게 맺는데, 멧새는 후박알을 먹으려고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애벌레를 잡아먹고 싶어서 찾아와요. 날씨가 포근한 남녘은 늦가을에도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어요. 늦가을부터 돋는 갓이랑 유채를 살펴보면, 갓잎과 유채잎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애벌레를 어김없이 볼 수 있습니다. 한 해 내내 푸른 잎사귀를 내놓는 후박나무에도 늦가을에 애벌레가 있어요. 열매와 애벌레를 찾는 멧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오면, 우리 집에는 구성진 노래잔치가 벌어집니다. 새마다 노랫소리가 다르니 언제나 다른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 있을 뿐이라 할 테지만, 이 나무 한 그루가 있기에 새들이 찾아와서 쉬면서 노래해요.
 
한편, 새는 모든 애벌레를 샅샅이 잡아먹지 않습니다. 애벌레 몇 마리 귀엽게 놓아 줍니다. 왜 그러할까요? 애벌레를 샅샅이 잡아서 먹으면, 다음에는 더 잡아먹을 애벌레가 없기 때문입니다. 애벌레가 커서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난 뒤, 다시 알을 낳아 새로운 애벌레가 자라야 새도 두고두고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나무는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서 새 잎을 틔울 수 있고, 애벌레는 나뭇잎뿐 아니라 풀잎을 골고루 갉아먹으면서 풀도 알맞게 보듬습니다. 그리고, 이 애벌레가 깨어나 나비나 나방이 되어야, 쉴새없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받이를 하지요. 나무나 풀은 잎사귀를 애벌레한테 조금 내주고 꽃가루받이를 하니, 서로 돕고 보살피는 사이라고 할 만합니다.
 
“느티나무 엄마는 아기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가 봐요. 언제까지나 안고 있으려고 가지째 떨어진대요(22쪽).”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집니다. 한여름에는 그늘에서 시원하게 쉽니다. 겨울에도 나무는 가지를 벌리면서 춤을 춥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무엇보다 겨울에는 나무가 찬바람을 가려요. 차디차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나무가 고스란히 받아서 노래로 바꾸어 줍니다. 나무가 우거지면 바깥소리를 막지요. 나무는 우리 보금자리에 시끄러운 바깥소리가 덜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도록 가립니다. 집이나 건물을 둘러싸고 나무가 겹겹이 있으면, 자동차 구르는 소리를 거의 다 막을 만해요.
 
소리를 막는 울타리를 높게 세운들 소리를 제대로 막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한 겹만 있어도 웬만한 소리를 거뜬히 막고, 나무가 두 겹이 있으면 거의 모든 소리를 막으며, 나무가 세 겹으로 둘러싸면 바깥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안쪽에서는 포근해요. 게다가 나무가 자라서 우람하게 서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골고루 퍼지면서 아름다운 삶터를 이룹니다. 나무는 언제나 푸른 바람을 일으키니 우리 가슴에서 푸른 이야기가 싹틀 수 있습니다.
 
숲이 되려고 기다리는 씨앗은 오랫동안 흙 품에 안겨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이 되려고 기다리는 ‘사람씨앗’이지 싶어요. 오늘까지 고요히 잠잘 수 있고, 이튿날에도 아직 긴잠에서 안 깨어날 수 있지만, 머잖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온누리를 환하게 밝히는 고운 사랑이 됩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착하고 참다운 멋진 사랑이 돼요.

글쓴이 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전남 고흥에서 꾸린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살려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후원 은행계좌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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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1/28 [19:19]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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