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달"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이야기 조각- 푸른숲 시골빛 삶노래(7)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기사입력 2014/06/30 [21:53]

"꽃이 피는 달"

아름다운 우리말로 빚어내는 이야기 조각- 푸른숲 시골빛 삶노래(7)

최종규 우리말지킴이 | 입력 : 2014/06/30 [21:53]


삼월에는 삼월꽃이 핍니다. 사월에는 사월꽃이 핍니다. 오월에는 오월꽃이 피어요. 그리고 유월에는 유월꽃이 피어요. 그러면 칠월에도 꽃이 필까요? 그럼요, 칠월에도 꽃이 핍니다. 팔월에는 어떤 꽃이 필까요? 팔월에도 온갖 꽃이 피는데, 팔월꽃 가운데 가장 눈부신 꽃이라면 아무래도 벼꽃이지 싶어요. 한겨레가 아침저녁으로 먹는 쌀밥이 되어 주는 벼알에 돋는 벼꽃이 있어요.
 
오월에 찔레꽃이 핍니다. 찔레꽃이 피는 옆으로 들딸기와 멧딸기가 익습니다. 하얀 꽃빛과 빨간 알빛이 사랑스레 어우러집니다. 딸기넝쿨에 돋은 가시에 긁히고 찔레나무에 돋은 가시에 찔리면서 딸기알을 톡톡 땁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찔레꽃이 피고 딸기알이 굵는 오월은 보릿고개입니다. 오월 들판을 바라보면 보리알이 굵지만 아직 익지는 않아요. 오월 끝무렵이나 유월이 되어야 비로소 보리를 거둘 테니, 찔레와 딸기는 배고픈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고마운 들밥이 되었으리라 느껴요.
 
오월에 피는 여러 가지 꽃 가운데 감자꽃이 있습니다. 감자를 느즈막하게 심었으면 유월에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뉴월에 피어나는 감자꽃이라고 할 만해요. 일찍 심으면 오월꽃으로 만나고, 늦게 심으면 유월꽃으로 마주합니다.
 
동시집 《감자꽃》(창비,1995)을 읽어 봅니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감자꽃).” 하고 노래하는 이야기가 깃든 동시집입니다. 《감자꽃》이라는 동시집을 내놓은 분은 권태응 님이고, 1918년에 태어나 1951년에 숨을 거둡니다. 일제강점기에 독서회 일로 붙잡혀 한 해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고, 감옥에서 폐결핵에 걸려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예 서른네 살 나이로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갑니다.
 
권태응 님은 아픈 몸으로 동시를 썼어요. “키가 너무 높으면, /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땅감나무).” 하는 노래를 아픈 몸으로 꾹꾹 눌러서 썼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아픈 몸으로 쓰는 동시 한 줄은 어떤 마음이 깃든 노래일까요. 어떤 꿈일까요. 아픈 몸이지만 씩씩하게 쓰고 또 쓴 동시 한 줄은 어떤 꿈이 담긴 사랑일까요.
 
“영남에 살아도 우리 동무. / 평안에 살아도 우리 동무(우리 동무).” 같은 노래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동시라는 이름이 붙으니 동시라고 할 테지만, 동시이기 앞서 시입니다. 동시나 (어른)시라고 하기 앞서 노래입니다. 노래라고 하기 앞서 삶이고 사랑입니다.
 
해방 언저리와 한국전쟁 앞뒤로는 ‘영남과 평안’을 말할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무렵 우리 겨레는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채 다투어야 했거든요. 그러나, 남북으로 갈린 채 다툰 이는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아요.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다툽니다. 총을 든 군인이 다툽니다. 칼을 찬 경찰이 다툽니다. 머리띠를 두른 지식인이 다툽니다.
 
왜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투어야 할까요?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투니, 남녘은 남녘대로 영남과 호남으로 또 갈라서 다투는 틀이 생기지 않을까요. 북녘에서도 평안과 함경으로 또 갈라서 다투는 틀이 생기지 않나요. 남녘과 북녘으로 갈라서 다툰다면, 한국과 중국과 일본으로 갈라서 다시금 다투어야 합니다. 지구별에 평화가 아닌 전쟁만 감돕니다.
 
“북쪽 동무들아 / 어찌 지내니? /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왔겠지. // 먹고 입는 걱정들은 / 하지 않니? / 즐겁게 공부하고 / 잘들 노니(북쪽 동무들)?” 하고 부르는 노래를 생각합니다. 참말 이러한 이야기를 동시로뿐 아니라 노래로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겨울이 한 발 먼저 찾아오는 북쪽에서 살아가는 동무한테 마음을 씁니다. 봄이 한 발 먼저 찾아오는 남쪽에서 살아가는 동무한테 마음을 기울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할 삶에 마음을 둡니다.
 
문학은 언제나 삶을 그립니다. 어른문학도 어린이문학도 언제나 삶을 그립니다. 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나날을 그리는 문학입니다. 함께 사랑하고 돌보며 어깨를 겯을 삶을 그리는 문학입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문학입니다. 오월에 오월꽃이 피어나듯, 오월에는 오월을 밝히는 숨결을 담는 문학입니다. 찔레꽃을 노래하고 감자꽃을 노래합니다. 고추꽃을 노래하고 오이꽃을 노래합니다. 감꽃을 노래하고 창포꽃이랑 붓꽃을 노래해요. 앙증맞도록 조그맣지만 올망졸망 돋는 돌나물 노란 꽃송이를 노래합니다.
 
오월에는 장미꽃도 피어요. 소담스럽게 봉오리를 벌린 장미꽃을 노래하다가, 오월에 마지막으로 꽃송이 벌리면서 작은 꽃빛을 베푸는 봄까지꽃을 노래합니다. 봄까지꽃 옆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괭이밥꽃을 노래해요. 괭이밥꽃 곁에는 토끼풀꽃이 있습니다. 토끼풀꽃 둘레에는 또 무슨 꽃이 있을까요? 토끼풀꽃 둘레에서 피고 지는 들꽃을 얼마나 느끼거나 마주할 수 있는가요?
 
동시집 《감자꽃》을 새롭게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곧잘 이 동시집을 펼쳐서 가락을 스스로 지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사다리를 타고서 한층 두층 / 언니 따라 지붕에 올라갑니다. / 박덩이 뒹굴대는 한옆에다 / 빨강 고추 흰 박고지 널어 놓아요(가을 지붕).”와 같은 노래는 어떻게 부를 만할까 생각에 잠깁니다. 풀로 이은 지붕이기에 예부터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박꽃을 보고 박알을 얻으며 박고지를 말립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 훑고 지나간 시골마을 어디에나 풀지붕은 없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새마을운동 슬레트지붕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멈추었어도 새마을 깃발은 오늘날에도 펄럭여, 시골집마다 시멘트기와지붕이며 양철지붕입니다. 슬레트와 시멘트와 양철로 얹은 지붕에는 박넝쿨이 뻗지 못하고, 박꽃이 피지 못하며, 박알을 맺지 못해요.
 
오월은 달력에 적힌 숫자로 ‘5’이 아닙니다. 사월도 ‘4’이 아니고, 유월도 ‘6’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도 달력에 적힌 몇 월 몇 일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새롭게 뜨는 해와 함께 밝게 흐르는 하루입니다. 새롭게 부는 바람과 함께 맑게 흐르는 하루입니다. 마음에 먼저 꽃이 필 적에 들과 숲과 길에서 피는 꽃을 알아봅니다. 마음에 먼저 사랑이 자랄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마음에 먼저 웃음이 솟을 적에 아침을 웃음노래로 열고 저녁을 웃음빛으로 닫습니다.
 
꽃이 피는 달에 꽃을 생각합니다. 열매가 맺는 달에 열매를 생각합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날에 개구리를 생각하고,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날에 아이들과 함께 얼크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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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종규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전남 고흥에서 꾸린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살려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같은 책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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